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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세브란스 병원의 역사
  • 이정효 언론인
  • 등록 2025-01-06 15:43:10
  • 수정 2025-01-10 18: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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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verance(세브란스) >



미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1859년 세계 최초로 석유갱이 발견되자 친구 Rockefeller(록펠러)와 함께 석유회사를 세웠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 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 도시 곳곳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 병원, 교회를 지었다. 그리고 완공된 건물을 시에 기증했다.


그의 이름은 Severance(세브란스)이다.


그는 빈민과 고아를 돌보았던 부모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자선 활동에 헌신하기로 마음 먹었다.


1900년의 어느 날, 그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설을 듣게 되었는데, 연사는 당시 조선(대한민국)에서 의료봉사 활동중이던 의사 Avison(에비슨) 선교사였다.


에비슨 선교사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했다.

"조선에 있는 병원들은 병원이라 부를수 없을 만큼 빈약합니다. 간호사도 없이 한 명의 의사가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이 연설을 들은 세브란스는 흔쾌히 기부했고, 4년 후 경성(서울)에 조선 최초의 종합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다.


현재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의 모체이며, 당시 기부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약 5,000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조선의 왕부터 백성까지 누구나 진료 받을수 있는 자선병원이었다.


세브란스는 자신의 주치의 였던 lrving Ludlow(어빙 러들로)도 조선으로 보냈다.


'어빙 러들로'는 26년동안 외과전문의로 활동하며 낙후된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어빙 러들로'가 미국 본국에 입국한 이듬 해, 세브란스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낡은 수첩에는 기부금을 약속한 여러 곳의 이름이빼곡히 적혀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약속이 지켜질수 있도록 기금까지 마련해 두었으나, 정작 자신 명의의 집은 한 채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한다.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내가 더 행복하다."고......


이 얼마나 가슴이 져려오는 감동의 모습인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교훈을 몸으로 실천한 성자의 모습이 아닌가?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세워진 의술의 초석은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군사, 안보에만 도움을준 것이 아니라, 종교, 경제, 의료, 교육 등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항복시켜 우리나라를 해방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끌어 주었을 뿐 아니라, 6.25 전쟁에서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의 위협으로 부터 구해준 은인이다.


이승만 박사의 건국이념인 한미동맹의 가치와 성과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가장 큰 밑바탕이었음은 전 세계와 역사가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국민들의 일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여 답답하고 안타까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수가 없다 ~.





필자  이정효


UN한국NGO재단 이사장

(전국시민단체연합 중앙회)

국기 태권도/ 대한노인회 중앙회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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