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우리사회는 지상파,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트롯 유흥상금 경연의 열기가 확산되어 가면서 우리 고유의 민족성 마져 병들어 가고 있다.
여의도 정치는 민생을 팽개치고 논쟁만을 하고있어 국민의 원성 또한 하늘을 찌르고, 여야정당은 일부지역 보궐선거를 앞두고 공개 막말을 일삼고 협잡과 정쟁으로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방불케하여 실로 언론인으로서 피를토하고 죽고싶은 심정이다.
正論直筆이란 용어는 사라지고 언론사들이 이해관계와 편파보도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고 국민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어 필설로서는 도저히 표현키도 부끄럽다.
1975년 일본(日本)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한편의 논문이 실렸다.
일본의 자살(自殺)이란 의미심장한 제목아래 일군(一群)의 지식인 그룹이 공통 집필한 문건이다. 필자들은 동서고금 제(諸) 문명을 분석한 결과 모든 국가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에 스스로 붕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찾아 낸 국가 자살의 공통적 요인은 이기주의요, 포플리즘(대중영합)이었다.
국민들이 작은 이익만 추종하고 지배 엘리트가 대중과 영합 할 때 국가는 쇠망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잊혀졌던 이 논문은 몇 년전 「아시히신문」이 인용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논문은 로마제국 쇠락의 원인을 빵와 서커스로 요약했다.
로마가 번영을 구가하면서 로마시민들은 책임과 의무를 잊은 도덕적 유민(遊民)으로 변질됐다. 그들은 대 지주와 정치인에게 몰려가 빵을 요구했고 정치인들은 환심을 사려고 공짜로 빵을 주었다. 무료로 빵을 보장받아 시간이 남아도는 시민들이 무료해하자, 지배층은 서커스까지 제공했다.
기원후 1세기 클라디우스 황제시대 콜로세움(원형경기장)에선 격투기 같은 구경거리가 년간 93회나 열렸다. 그것이 날로 늘어나 4세기 무렵엔 무려 175일간 서커스가 벌어지는 상황이 됐다. 대중이 권리만 주장하고 엘리트가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 할 대 그 사회는 자살코스로 접어든다. 로마는 활력 없는 복지국가는 태만한 레저사회로 변질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데 됐다.
그것이 로마 만의 일은 아니었다.
인류역사상 출현했던 모든 국가와 문명이 자체 모순 때문에 스스로 몰락했다. 국가가 기개를 잃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자살로 치닫게 된다.
빵은 무상 복지, 서커스는 포플리즘을 상징한다. 나아가 40년 전 논문을 다시 꺼내 정독(精讀)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상황이 바로 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눈앞에 이익만 취하려는 근시안적 이기주의다. 증세론(增稅)를 거부하면서 복지를 원하고 다가올 재정 파탄에는 눈을 감은 채 당장의 몫을 더 달라고 조른다. 로마는 국가들에게 서커스를 제공했지만 대한민국은 트로트를 제공하고 있다. TV채널마다 온통 트로트다.
20세기의 대한민국의 기적을 낳은 것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는 결제심과 책임감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미래는 없고 현재만 있다. 미래를 준비하며 국가 전략을 짜야 할 정치 관료와 엘리트들은 인기에만 영합하여 문제를 놓치고 있다.
결국 파기 됐지만 공무원연금개혁을 둘러싼 여·야합의는 빵과 서비스의 전형이었다. 고치는 시늉만 하고 공무원연금 파산의 구조적 원인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국가연금까지 끌어 들여 1,600조원이나 더 보태는 불가능한 약속까지 하면서 포플리즘의 극치를 달렸다.
야당은 국익대신 공무원집단들의 편을 들었고 여당은 야합했다. 야당은 공무원 연금으로도 모자라 국민연금까지 포플리즘의 난장판으로 끌어 들였고 여당도 야합했다. 여도, 야도 눈앞의 현재만 달콤하게 속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정치 서커스에 열을 올린 결과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빵과 서커스와 같은 국가 자살 징후는 온갖 분야에서 목격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의 부작용을 알면서 세종시를 만들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서민층 몫을 더 줄이는 역설(逆說)을 보고도 여전히 무상복지를 외치고 있다. 집단의 이익이 국가 이익보다 우선시 되고 당장의 몫을 쟁취하려는 떼쓰기가 곳곳에서 난무하고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일본의 우경화도, 중국의 팽창주의도 아니다. 병리(病理)를 알면서도 치유할 힘을 잃은 자기 해결 능력 상식이 더 문제다.
망조(亡兆)가 든 나라는 타살(他殺) 당하기 전에 스스로 쇠락하는 법이다. 국가자살을 걱정한 50년전 일본지식인들의 경고가 무섭도록 절실하게 다가온다.
국가의 자살?
지구상에서 수천년 동안에 국가의 흥망을 분석해보면, 내부적 요인으로 쇠락 해지면 이웃국가가 못 이기는 척 먹어 버리고 망해 버리는 것을 국가 자살이라고 표현했고, 100년 전 조선이 그랬고 현재의 한국도 너무 닮았다. 정치권은 스스로 이병을 절대로 고칠 수 없다.
아니 그들은 안 고칠 것이다.그렇다면 국민인데 이국민에 불을 지르는 것은 지식인이 나서야 한다. 특히 대학교수들이 나서야 하는데 지성이 있는지 답답하다. 4·19 때 고대교수들이 먼저 길거리에 나서서 불을 붙였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우리 국회의원을 100명 이내로 확 줄이고 권력 특권기능을 전부 없애야 한다. 시민의 봉기의 힘으로 이루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면 결국 총을 든 사람들이 나서서 국가자살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안은 아니지만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성인이 나서도록 널리 여론화해 나가야 한다.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가슴속 비명이며 울분이다.
필자 이정효 (李井孝)
UN한국NGO재단 이사장
대한노인회 중앙회 홍보대사
國技 태 권 도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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