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미국 현지 시각),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정의선 회장은 "오늘 저는 향후 4년간 21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추가로 발표하게 돼 기쁘다. 이는 우리가 미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최근 자유무역체제가 붕괴되고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로 글로벌 패러다임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핵심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하여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을 붕괴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한다.
주지하듯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보조금 지급 등 자국 우선주의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지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 등 주력 기업은 미국의 관세 장벽을 회피하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보조금 혜택을 누리기 위해 대미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우리나라의 재벌‧대기업들은 수십조 원 규모의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실행해 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이외에 국내 현대제철 공장을 폐쇄하고 미국에 공장을 신축하여 대미 수출물량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까지도 밝힌바 있다.
이와 같은 재벌‧대기업의 대미투자 확대는 일견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공동화 및 이에 따른 고용감소 등 국내 경제기반의 침식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구조적 혁신을 뒤로한 대규모 해외 투자는 단기적 시장 확대를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핵심 우리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설비와 고부가가치 공정의 해외 이전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지속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의 해외유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해외자회사로부터의 수입배당금에 대한 익금불산입 규정 등을 통해 주요 재벌‧대기업들에게 수십조 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감면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대규모 감세가 국내투자 활성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25년 현재 재벌‧대기업들은 오히려 미국 등 해외투자를 대폭 확대하였을 뿐이다. 또한 재벌‧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 규정도 무력화되면서 재벌‧대기업의 해외투자에 따른 경제적 이익마저 그 계열사와 대주주들에게 귀속되고 있다. 윤석열정부에서 주장한 낙수효과는 미국과 재벌‧대기업, 그리고 그 대주주 일가에게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적 경제 환경은 엄혹하고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반헌법적 친위쿠데타를 자행한 내란수괴에 대한 파면조차 지연되고 있는 현실은 실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라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우리나라의 경제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을 보호하고 산업공동화를 예방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국회도 재벌‧대기업의 주요 해외투자를 대상으로 청문회 등을 개최하여 국내 고용감소와 산업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등 필요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중산층과 서민 경제가 붕괴되고 자본과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등 경제기반이 침식되어 가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서둘러 내란수괴에 대한 탄핵 절차 마무리와 함께 작금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5년 3월 3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