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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 이진별 편집장
  • 등록 2024-12-31 05: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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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오전 9시 7분경,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 하던 중 새 떼와 부딪히면서 공항 활주로를 벗어나 외벽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181명 중 2명의 생존자만 남고 나머지 179명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지난 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로 228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생존한 사고 이후 최대 항공참사로 기록되게 되었다.


사고발생 후 유족들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을 찾기 위한 처절한 울음과 몸부림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참사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사고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번 참사 때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권성동 국민의 원내 대표나 유력 정치인들이 내려와 유족들을 위로하며 사고대책 마련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내뱉기만 한다.


올 한해동안 전대미문의 의료대란이 발생해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많은 목숨들이 안타까이 죽어나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에 잘 정비된 대형병원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현장에 한번 가보라”고 유체이탈 발언을 한 게 다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들이 죽어 나간다’고 지적하자 “어디 환자들이 죽어나가요, 그건 가짜뉴스입니다”라고 소리친 한덕수 총리나 조규홍 복지부장관, 조규호 교육부 장관이 무너진 의료현장에 며칠은 고사하고 단 몇 시간이라도 머물며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애썼다는 보도는 없었다.  


과거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136일간 진도 팽목항에 숙식을 하면서 실종자와 유가족을 다독였다. 텁수룩한 수염을 제대로 깎지도 못한 상태에서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고 수습에 진정성을 보인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창궐할 당시 안철수 의원(국민의당 대표)는 여러날 동안 대구의 의료원에서 의료 자원봉사에 나서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간 많은 정치인들이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현장에 잠시 왔다가 유족들과 사진 찍고 사고수습에 노력하겠다며 몇마디 립서비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에서는 누가 이주영 장관이나 안철수 의원과 같이 사고 현장에 며칠 간 머물면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진성성있는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위정자의 진정성은 위기 때 잘 나타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 담장을 넘어가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하는 영웅적 모습을 보였지만 같은 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의원들을 국회가 아닌 당사로 빼돌리거나 나경원 의원은 국회의사당 출입을 차단당했다며 발길을 돌리는 초라한 모습을 보인 정치인도 있다.


2024년 12월31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뀔 것 같지만 올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은 그대로 내년에도 이어진다. 나폴레옹의 얘기가 생각난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어제 내가 잘못 보낸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 어제 행한 나의 행적은 절대 죽지 않는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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